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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진사향] 손등 가득 흉터는 老주방장의 훈장인가 바삭하면서 부드러운 \'군만두의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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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3
  • 첨부파일 : csh.jpg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군만두편
서울 구로동 '진사향'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의 오랜 격언은 군만두에도 예외가 없었다. 탕수육·짜장면 세트를 시키면 으레 딸려왔던 군만두 때문에 진짜 군만두를 찾기 힘들어졌다. 당면만 들어간 서비스 군만두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돈 내고 군만두 사 먹기를 주저했다. 군만두는 상에 깔린 김치 같은 신세가 됐다. 자연스레 김치는 중국산, 군만두는 공장제가 시장을 장악했다.

서울 구로동 ‘진사향’에서는 바삭하면서 부드러운 모순된 식감이 공존하면서 씹으면 고소한 육즙이 흥건하게 입안을 적시는 궁극의 군만두를 맛볼 수 있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만두를 빚어본 사람은 그 수고를 안다. 생활의 달인이 되어도, 4차 산업혁명이 코앞이라도 만두 빚는 일은 고되다. 그나마 이북식 왕만두는 냉면집의 중요한 사이드 메뉴가 되어 명맥을 유지했다. 반면 짜장면처럼 제값 받기 어려운 중국집 군만두는 제대로 만드는 곳이 드물어졌다. 오히려 일본 라멘집의 교자가 중국집 군만두보다 더 나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독야청청 힘들여 만두를 빚고 굽는 집은 남아 있다.

그중 도봉산 자락에 못 미친 방학동 '수정궁'은 군만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신기루 같은 곳이다. 점심 영업 없이 오후 5시에 문 여는 이곳은 일요일에 영업하지 않는다. 메뉴는 만두류 일체, 오향장육과 고기 튀김 정도가 전부다. 그중 군만두는 가장 먼저 동나는데 그 시간이 대중없다. 퇴근하자마자 달려가 손을 흔들어도 '다 떨어졌다'는 냉정한 말 들은 적이 수차례다. 푸릇한 부추가 비치는 찐만두도, 소금간 간간하게 되어 일급 술안주인 고기 튀김도, 하다못해 오향장육도 기준선을 가뿐히 넘어선다. 그럼에도 잘못 씹으면 앞사람에게 쭉 육즙이 튈 정도인 군만두에 비하면 사족, 부록, 덤, 이런 말이 끝말잇기 하듯 떠오른다.

중식 아닌 분식계 군만두를 꼽자면 김포 장기동 '상화'가 손에 꼽힌다. 아파트 띄엄띄엄 들어선 김포 깊숙이 상가 건물 주르르 올라간 어귀에 자리 잡은 이 집을 보면 '별거 있나'란 생각부터 든다. 메뉴를 보면 그 편견은 더해진다. 메밀국수부터 만두전골, 찐만두, 군만두를 다 다루는 전형적 분식집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만두를 입에 넣기 전까지다. 새우 꼬리가 살짝 삐져나온 새우만두, 김치가 서걱서걱 씹히는 김치만두 먹다 보면 잔 펀치에 맛이 가듯 '어어' 하고 접시에 고개가 숙여진다.

압권은 비빔만두다. 빨간 양념 툭 올라간 양배추채를 살짝 치우고 군만두를 씹으면 예상치 못한 감각이 찾아온다. 보통 '튀긴' 군만두는 피가 질기다. 겉은 바삭하지만 씹다 보면 껌처럼 질겅거린다. 그런데 이 집 군만두는 씹는 순간 '파삭' 하고 피가 부서져 내린다. 그렇다고 바싹 말라 날카롭게 갈라지는 종류도 아니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바삭함이란 모순된 말을 쓸 수밖에 없다. 이 맛에 놀라 주인에게 물었다. "만두피 비결이 뭔가요?" 주인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 "비밀입니다." 그러고 곧 말을 이었다. "만두를 그때그때 빚는 거죠. 빚고 냉장고에 넣어두면 피가 질겨지거든요." 그는 말하면서도 손을 쉬지 않고 만두를 빚었다. 그의 너른 등 뒤로 똑같이 빚은 만두가 수백 개였다.

 

 

다시 중식 만두로 넘어가면 구로동 '진사향'이 끝을 장식한다. 본래 연희동에서 칼을 잡던 진생귀 주방장이 자리를 옮겨 문을 연 집이다. 코코모 호텔 지하, 환한 주방이 크게 자리 잡고 정장을 차려입은 매니저가 정중히 손님을 맞는다. 군만두를 청하면 기를 모으듯 인상을 쓴 요리사 얼굴이 너머로 보인다.

이 집 군만두는 군만두의 이데아 정도 된다. 한 면은 노릇하고 한 면은 고양이 배처럼 보드랍다. 베어 물면 흥건한 육즙은 기본, 잡내 없이 고소한 돼지고기 향이 부추, 생강과 어우러진다. 바삭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공존한다. 만두 하나를 입에 문 채 다른 만두를 젓가락으로 집게 된다. 만두 접시를 다 비울 때쯤 나이 든 주방장이 테이블을 돌며 인사했다. 거친 손등에 온갖 흉터가 그득했다. 작은 만두를 오랫동안 빚으며 얻은 훈장이었다.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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